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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우리

노규선 대학생 기자

2025.03.10

조회수 17796

COLUMM


 

관계 속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우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관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삶이 힘들 때는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면서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과 관심에 마냥 의지할 수 없게 되죠.

그럼에도 인간관계가 주는 고통은 우리의 삶에 필연적으로 다가옵니다.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우리의 관계에 담긴 한 편의 서사를 그려봅니다.



봄 이야기

봄이었다. 대학교 4학년, 나는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교육 과정을 신청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점차 사그라지며

온전히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들었던 지난 시간과 달리, 다시 교정을 밟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설레는 일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강의실에 도착하니,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대 청년들이 가득했다. 나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몇몇은 이미 서로 친숙해 보였다. ‘잘해보자.’ 설렘과 걱정이 뒤섞인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강의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너무 멀리 앉았던 걸까. 강사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다. 한 학기 내내 고군분투하다 끝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커질 무렵, 옆자리의 동료가 속삭이듯 물었다. 

“저기, 소리 잘 들리시나요?”, “잘 안 들리네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내일은 같이 앞쪽으로 갈까요?”

사투리가 매력적인 그는 성격도 시원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들으며 점점 가까워졌다.

낯선 이들에게 느꼈던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했다. 내게 동료라는 존재는, 마치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다가왔다.



여름 이야기

여름이 되자, 우리는 어느덧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처럼 우리의 열정도 식을 틈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새벽이 올 때까지 함께 공부했다. 서로에게 챙겨주는 간식거리도 다정한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종종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연애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던 그는 사랑을 신념처럼 품고 사는 절절한 사랑꾼이었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내가 묻자, 평소 사랑을 외치던 그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조금 우울해졌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는 관계가 불러올 고통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피어난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불러왔다.

어쩌면 우리는 두려움 속에 갇혀 다가올 관계를 저버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가을 이야기

가을이 오고, 교육 과정은 끝이 났다.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바쁜 일상에서 교육 과정 동료들과 가끔 만날 수 있었다. 

관계의 부재를 자초했던 나였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고 나면 쉽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버텨낸

우리였기에, 그 관계 속에는 온정이 남아 있었다. 

“다음에 또 봅시다.”

나는 마중 나온 동료에게 덤덤히 인사를 건네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반면 사회생활은 달랐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이 많았고, 한때 뜨거웠던 열정이 점차 사그라지기도 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도 많았다. 어느 순간 나를 지탱해 주던 ‘관계’들이 이제는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끊어내고

싶었지만, 관계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야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천천히 추락하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 아래 찬란하게 빛나던 나뭇잎들,

그리고 조용히 흩날리는 낙엽들. 간신히 매달린 마지막 잎새가 애써 버티며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겨울 이야기

연말이 되자, 나는 동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그들을 만나러 갔다. 아침 빛이 돌던 출근길과 달리,

제법 어둑해진 풍경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그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럼요.” 

나도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존대했다. 너무 가까워지면 멀어질까 봐, 혹여나 끊어져 버릴까 봐,

보이지 않는 약속을 했었나 싶다.


“해독주스 한 잔 드시죠.”

동료가 믹서기에 채소와 과일을 넣자, 투박한 소리와 함께 재료들이 조각났다. 당근이 부서지고, 양배추가

아삭거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편이 편안해졌다. 

내가 비트 한 조각을 집어넣자, 음료는 적색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그 위로 스며든 황금빛 사과색이 꽤 놀놀했다. 

무지근한 내 영혼을 이 음료 한 잔으로 덜어내고 싶었다. 사랑으로 채우고 싶었다. ‘나도 해독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염원을 품으며 그가 건넨 음료를 들이켰다. 

카페에서 마셨던 해독주스보다 더 건강하고 순수한 맛이 났다. 온정의 향을 머금은 채, 눈을 감았다.

‘따뜻한 봄이 오는구나!’



이별과 만남

삶은 늘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관계 속에 있다.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천천히 유영하며 살아간다. 

관계, 이건 마치 단풍나무와 같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잎을 물들이고, 떨어뜨리며, 다시 새잎을 틔워내는 단풍나무 말이다.

단풍나무는 몰아치는 비바람에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애타는 그리움을 붉게 태워 보석으로 떨쳐낸다.

따스한 겨울이 오면 외로워서 단단한 추억을 새긴다.


새살 거리는 햇볕 아래 새 한 마리 힘차게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았다. 다가오는 당신에게 어떤 색을 선물할까.

떠나가는 당신에게 어떤 색을 선물할까? 

나의 단풍나무는 사계절의 숨결을 느끼며, 그저 자신의 빛깔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랑, 희망, 존중을 품은 채로 말이다.

단풍나무는 오늘도 노래한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좋은 울림을 건네기 위해서. 주름이 하나 늘었다.



글 노규선 대학생 기자